2025년은 세계 경제사에서 단순한 경기 순환이 아닌 기존 질서가 해체되고 새로운 질서가 태동하는 '구조적 전환점'으로 기록될 것이다. 파이낸셜타임스는 25일자 특집 기사에서 올 한 해를 "혼란과 호황의 기묘한 동거"라고 묘사했다.
◆ 관세전쟁의 전면화: 120년 만의 보호무역 회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4월 2일을 '해방의 날'로 선포하고 국제긴급경제권한법을 발동하며 상호관세 정책을 시작했다. 상대국이 미국 제품에 부과하는 관세만큼 동일하게 되갚는다는 단순하지만 파괴적인 원칙이었다.
예일대학교 버짓랩 분석에 따르면 4월 기준 미국의 평균 실효 관세율은 27%로 치솟았으며, 이는 1903년 이후 122년 만에 기록된 최고 수치다.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 데이터에 따르면 대중국 수입품 평균 관세율은 47.5%에 달했고, 그 결과 중국의 대미 수출은 1분기부터 3분기까지 전년 동기 대비 25% 가까이 급감했다.
관세정책의 부작용도 심각했다. 예일대 분석에 따르면 올해 미국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1.1%포인트 하락했으며, 물가는 단기적으로 2.9% 상승해 가계당 연간 약 4천700달러의 실질 구매력 손실이 발생했다. 실업률도 0.6%포인트 상승해 약 74만 개의 일자리가 감소한 것으로 추산됐다. 트럼프 행정부는 관세로 12월까지 누적 2조 5천억 달러의 세수를 확보했다고 선전했으나, 이는 사실상 미국 소비자들에게 전가된 간접세였다.
◆ 한국의 선택: 3천500억 달러 투자로 관세 방패 확보
한국은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치열한 셔틀 외교를 전개했다. 2월부터 6월까지 통상교섭본부장, 외교부 장관, 국가안보실장은 거의 매주 워싱턴을 방문했으며, 하워드 러트닉(Howard Lutnick) 미 상무장관과 제이미슨 그리어(Jamieson Grier)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를 따라 스코틀랜드까지 날아가 심야 협상을 벌였다.
7월 30일 양국 정상은 '한미 전략 통상 투자 협정'을 체결했다. 한국산 제품에 대한 상호관세율을 최대 15%로 제한하는 대신, 한국은 미국 조선업에 1천500억 달러를 직접 투자하고 반도체·인공지능(AI)·바이오 등 첨단 분야에 2천억 달러를 추가 투자하기로 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를 "국익을 위한 고육지책"이라고 평가했다.
10월 말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이 대통령은 "국제 사회에 영원한 적도, 영원한 친구도 없다. 오직 국익만이 영원하다"며 실리 외교 노선을 천명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한미 동맹을 재확인하는 한편, 시진핑 주석과의 회동을 통해 경제 협력의 끈을 놓지 않는 균형 감각을 보였다.
◆ AI 광풍: 엔비디아 5조 달러 돌파와 기술 봉건주의 경고
10월 29일 엔비디아(Nvidia)는 인류 기업 역사상 최초로 시가총액 5조 달러를 돌파했다. 이는 인도, 일본, 영국 등 주요 선진국의 GDP를 상회하는 규모로, 일개 기업이 국가 경제를 압도하는 '메가 코퍼레이션' 시대의 개막을 알렸다.
젠슨 황 최고경영자(CEO)는 향후 5분기 동안 5천억 달러 규모의 칩 주문이 확보됐다고 밝혔으며,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아마존 등 빅테크 기업들은 엔비디아 칩을 확보하기 위해 자본 지출을 6천320억 달러까지 늘렸다. 6개월 만에 주가가 85% 폭등하며 AI는 전 세계 자본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였다.
그러나 그리스 경제학자 야니스 바루파키스는 현재 상황을 '기술 봉건주의'라 규정했다. 그는 거대 테크 기업들이 디지털 플랫폼이라는 '영토'를 소유하고 그 위에서 활동하는 모든 경제 주체로부터 '클라우드 지대'를 수취하는 '클라우드 영주'가 됐으며, 우리는 모두 그들의 플랫폼에 데이터를 제공하고 알고리즘에 종속된 '클라우드 농노'로 전락했다고 경고했다.
환경 비용도 심각했다. 코넬대학교 연구진은 현재 AI 성장세가 지속될 경우 2030년까지 AI 데이터 센터의 탄소 배출량이 연간 2천400만~4천400만 톤에 달할 것으로 예측했다. 데이터 센터 냉각을 위해 소모되는 물의 양도 연간 7억 3천만~11억 2천만 입방미터로 수천만 명의 식수 사용량과 맞먹는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암호화폐 채굴과 데이터 센터가 전 세계 전력의 2%를 소비하고 있으며, 3년 내 3.5%까지 급증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 화폐 신뢰의 붕괴: 금 4천500달러 vs 가상화폐 대폭락
12월 금 가격은 온스당 4천500달러를 돌파하며 역사적 신고가를 경신했다. 연초 대비 70% 이상 폭등한 이 수치는 단순한 인플레이션 헤지를 넘어선 지정학적 공포의 척도였다.
금값 폭등의 직접적 계기는 12월 10일 미 해군 특수부대가 베네수엘라 관련 유조선 '스키퍼'호를 나포해 200만 배럴의 원유를 압류한 사건이었다. 이는 미국의 달러 패권이 군사력과 결합해 언제든 특정 국가 자산을 동결하거나 강탈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이에 중국, 러시아 등 브릭스(BRICS) 국가들은 달러 의존도를 줄이고 금 매집에 나섰다.
가상화폐 시장은 정반대 행보를 보였다. 7월 18일 트럼프 대통령이 서명한 '지니어스법(GENIUS Act)'으로 스테이블코인 발행자에게 100% 유동 자산 준비금을 의무화하며 제도권 진입을 시도했다. 그러나 법안 통과 과정에서 트럼프 일가 소유 가상화폐 기업 '월드 리버티 파이낸셜'의 이해충돌 논란이 불거졌다. 법안 통과 직전 이 기업이 아부다비 국부펀드로부터 수십억 달러 투자를 받았다는 사실이 드러나며 민주주의 시스템에 대한 불신이 가중됐다.
10월 10일 가상화폐 시장은 역사상 가장 참혹한 하루를 맞았다. 비트코인은 하루 만에 12만 달러에서 10만 달러 초반으로 14% 폭락했고, 알트코인들은 30% 이상 추락했다. 단 24시간 동안 190억 달러 규모의 선물 및 레버리지 포지션이 청산되며 160만 개 거래 계좌가 전액 손실을 입었다. 이는 가상화폐가 '디지털 금'이라는 내러티브가 허구임을 증명했다.
◆ 일본의 부활과 2026년 저성장 전망
일본은 올해 중요한 변곡점을 맞았다. 수십 년간 지속된 디플레이션과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뒤로하고 일본은행(BOJ)은 금리 정상화를 단행했다. 12월 26일 기준 일본 10년물 국채 금리는 2.04%를 기록하며 '정상 경제'로의 복귀를 알렸다.
국제통화기금(IMF)은 2026년 세계 경제 성장률을 3.1%로 전망하며 저성장 기조가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미국 인플레이션은 관세 정책 부작용으로 목표치를 상회할 것이며, 기준 금리는 올해 말 7%에서 내년 6.5% 수준으로 매우 완만하게 하락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 경제는 반도체 경기 회복과 대미 투자 수혜가 예상되지만, 미국 보호무역주의와 중국 경제 둔화라는 이중고 속에서 1.8~2.1% 수준 성장에 머물 것으로 보인다.
올해는 민주주의와 경제의 관계, 기술에 대한 맹신, 그리고 지속 가능성에 대한 깊은 성찰을 요구한 한 해였다. 트럼프의 관세 정책과 지니어스법 사례는 정치 권력이 사적 이익을 위해 경제 시스템을 왜곡할 때 그 대가는 서민에게 전가됨을 보여줬다. 엔비디아의 5조 달러 시총과 AI의 막대한 에너지 소비는 기술 발전이 반드시 인류의 보편적 번영으로 이어지지 않음을 시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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