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담 모습/보도영상 캡춰
회담 모습/보도영상 캡춰



볼로디미르 젤렌스키(Volodymyr Zelenskyy)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8일(현지시간) 영국 런던 다우닝가 10번지에서 키어 스타머(Keir Starmer) 영국 총리, 에마뉘엘 마크롱(Emmanuel Macron) 프랑스 대통령, 프리드리히 메르츠(Friedrich Merz) 독일 총리와 4자 정상회담을 갖고 미국이 제시한 우크라이나 평화안에 대한 공동 수정안 마련에 합의했다. 이번 회담은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미국 대통령의 '거래주의적' 종전 압박에 맞서 유럽이 독자적인 안보 구상을 본격화한 것으로 평가된다.

엘리제궁은 이날 회담이 "미국 계획을 우크라이나와 긴밀히 협력하여 유럽의 기여로 보완하는 작업"이라고 밝혔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회담 직후 "우리는 (미국안을) 다시 검토하여 미국에 보낼 것"이라며 반(反)우크라이나적 요소가 제거된 20개 조항의 수정안이 9일 저녁까지 완성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회담은 지난 5일부터 7일까지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서 벌어진 협상이 결렬된 직후 열렸다. 트럼프 대통령의 중동 특사 스티브 위트코프(Steve Witkoff)와 사위 재러드 쿠슈너(Jared Kushner)가 주도한 마이애미 협상에서 미국 측은 28개 조항의 평화안을 제시했으나, 우크라이나는 영토 양보를 포함한 일부 조항을 "명백히 반우크라이나적"이라며 거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 직전인 7일 "젤렌스키가 아직 제안서를 읽지도 않았다"며 "러시아는 이 안을 좋아하는데 젤렌스키는 준비가 안 됐다"고 공개 비난했다. 이에 대해 젤렌스키 대통령은 런던 회담에서 "법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영토를 포기할 권리가 없다"고 천명하며 영토 양보 불가 입장을 재확인했다.

미국 초안과 유럽-우크라이나 수정안의 핵심 차이는 영토 문제와 안전 보장 방식이다. 미국안은 현재 전선 동결과 러시아 점령지의 사실상 귀속을 시사했으나, 수정안은 1991년 국경 원칙을 고수하고 점령지에 대한 법적 인정을 불가로 못 박았다. 또한 미국안이 우크라이나 군 병력을 60만 명으로 제한하려 한 반면, 수정안은 이를 80만 명으로 상향하거나 제한을 철폐하는 방향으로 조정됐다.

안전 보장 문제에서도 양측 입장이 극명히 갈렸다. 미국안은 나토(NATO) 가입 유예 또는 영구 배제 조항을 담았으나, 유럽 측은 회원국 합의에 따른 가입 가능성을 열어두고 대신 양자 간 강력한 안보 조약 체결을 추진하기로 했다. 영국과 프랑스는 나토 틀을 벗어난 '의지 있는 연합(Coalition of the Willing)'을 주도해 유럽 평화유지군을 우크라이나에 파병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 중이다.

독일의 메르츠 총리는 회담 전부터 "미국 측 문서의 세부 내용에 대해 회의적"이라며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그는 사거리 500km의 타우러스(Taurus) 미사일 제공을 포함해 "우크라이나가 제공받은 무기를 국경 너머 군사 목표물 타격에 사용할 권리가 있다"고 천명하며 기존 사거리 제한을 사실상 폐기했다. 독일 정부는 우크라이나와 장거리 타격 능력 제공에 대한 기술적 협의를 마쳤으며, 구체적인 인도 시기는 "의도적인 모호성"을 유지하기로 했다.

경제 문제에서도 입장차가 드러났다. 미국안이 동결된 러시아 자산 수익의 50%를 미국이 회수하는 구조를 제안한 반면, 유럽 정상들은 동결 자산을 전액 우크라이나 재건과 무기 구매에 사용해야 한다고 의견을 모았다.

한편 미국 특사단은 지난 2일 모스크바에서 블라디미르 푸틴(Vladimir Putin) 러시아 대통령과 5시간에 걸친 회동을 가졌다. 러시아 측은 회동이 "유용하고 건설적"이었다고 평가했으나 영토 문제에서는 "타협점을 찾지 못했다"고 밝혔다. 푸틴 대통령은 유럽의 평화유지군 구상에 대해 "유럽이 우리와 전쟁을 원한다면 당장이라도 준비되어 있다"고 경고하며 외국 군대의 우크라이나 배치를 "수용 불가능한" 행위로 규정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런던 일정을 마친 후 브뤼셀로 이동해 나토 사무총장 마크 루터(Mark Rutte) 및 EU 지도부와 연쇄 회동을 가졌으며, 이후 로마를 방문할 예정이다. 회담에 참석한 정상들은 회담 후 다우닝가 앞에서 포토타임을 가졌으나 구체적인 질의응답은 피했다.

전선 상황은 여전히 긴박하다. 러시아군은 도네츠크주의 핵심 물류 허브인 포크롭스크(Pokrovsk)를 남쪽과 남서쪽에서 포위하려 하고 있으며, 우크라이나군은 "극도로 어려운" 상황에서 방어선을 유지하고 있다. 또한 러시아는 12월 초 하룻밤 사이 149대의 드론을 발사하는 등 우크라이나 에너지 인프라에 대한 공습을 강화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방공망은 이 중 131대를 요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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